지금은 없어졌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특이한 문화가 몇 남아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목돈을 주고 뭔가를 사오면 고사를 지내는 것이었는데요, 주로 돼지 머리와 반찬 몇 종류를 상 위에 올려놓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자동차라면 우리 가족 잘 태우고 무사히 돌아다니게 해달라, 냉장고라면 음식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해서 가족들 탈 안나게 해달라...

 

[Figure 1. 돼지머리 고사_검열ver.]

 

그걸 빈다고 바뀌는건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람 심리라는게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초월적인 존재가 자기만 좀 특별히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과속하다가 경찰한테 걸려도 돼지머리를 뇌물이랍시고 내놓으면 뺨 맞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경찰보다 훨씬 윗선일 신은 더 큰 뇌물을 요구할텐데 돼지머리로 되겠습니까?

 

서론이 길었지만 여하튼 큰 돈을 주고 사온 자산은 다른 싼 자산과는 다르게 대우를 해줬습니다. 주로 그 자산이 다년간 개인이나 가정에게 큰 효용을 가져와달라는 이유였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다년간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자산들을 다르게 취급하는데, 바로 오늘의 주제가 될 고정자산(Long-lived asset)입니다.

 

장기자산

 

기업이 돈을 내고 무언가를 사왔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정확히는 수많이 있지만, 회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1) 자본화(Capitalize)와 (2) 비용 처리(expense)입니다. 다만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준이 있습니다. 자본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산이 다년간 경제적인 이익을 불러와야합니다.

 

재무제표의 변화

 

고정자산은 재무제표에 어떻게 표기될까요? 먼저 재무상태표를 보겠습니다. 새로 자산을 샀으니 현금은 줄어들고, 줄어든 만큼 비유동자산이 증가합니다. 손익계산서에서는 당장 빠지는 것은 없지만 내년부터 감가상각을 반영해야하니 다음 회계년도부터는 당기순이익이 감소합니다. 마찬가지로 현금흐름표 역시 투자로 돈을 지출했으니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감소합니다.

 

[Figure 2. 회계 처리에 따른 재무제표 변화]

 

자본화의 범위

 

이렇게 자본화 된 자산은 재무상태표에 "사온 가격 + 비용"으로 기록됩니다. 우리가 에어컨을 샀다고 다 끝나는게 아니잖습니까? 에어컨을 샀으면 집까지 배송시켜야하고, 기술자 아저씨들이 와서 실외기 설치하고 실제로 돌아가는지 확인까지 해야 끝납니다. 고정자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거래 대금, 운송비, 세금, 설치비, 시운전 비용까지 모두 고정자산의 가격으로 산정됩니다.

 

[Figure 3. Range of Capitalization I]

 

이제 우리 에어컨은 돌아가는지 확인도 했고, 매년 여름마다 쌩쌩 돌아갑니다. 하지만 새롭게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 방에도 에어컨을 설치해야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에어컨을 사기 보다는 에어컨을 아이 방까지 연장시키고, 이왕 돈 드는 김에 필터도 교체합니다. 이런 경우 재무상태표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PPE를 개조시켜 더 나은 성능을 만들어내는 경우 이 비용을 장기 자산의 가치에 더해줍니다. 에어컨을 연장시키는 비용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장비를 유지보수하는 비용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비용 처리를 하게되는데, 에어컨 필터 교체 비용이 해당됩니다.

 

[Figure 4. Range of Capitallization II]

 

마지막으로는 조금 직관적이지 않지만, 에어컨을 사기 위해 빚을 졌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에어컨을 사는 동안 지불하는 이자는 어떻게 처리될까요? 에어컨 사용 완료 직전까지 지불한 이자는 회계 장부에 에어컨 가격으로 적힙니다. 교과서적인 이유로는 (1) 자산의 가격을 더 정확하게 계산하고 (2) 자산이 뽑아내는 수익과 자산을 구매하는데 든 비용을 더 잘 매칭시키기 위해서인데, 별로 좋은 설명은 아닌 것 같군요....

 

여하튼 고정자산을 사기 위해 진 빚은 준비 완료 직전까지 자산의 가격에 포함되고, 완료된 이후부터는 비용처리 됩니다. 여기서 기업 분석 시 참고할만한 포인트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이 빚에 대한 이자는 손익계산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장기 자산의 일부로 판정되어 그 다음 해부터 감가상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얼마나 이자를 내는지는 단순히 손익계산서만 봐서는 안되며, 고정자산에 얼마나 녹아들어갔는지 확인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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